<기고> 정현기 문학평론가(초월읍 서하리 거주)

5. 아직도 우리는 시에서 묻고 배운다

들판에는 죽은 노루/하얀 띠로 싸맨다오./봄 그리는 처녀 있어/씩씩한 총각이 꾄다오.//수풀에는 떡갈나무/들판에는 죽은 사슴/하얀 띠로 묶는다오./옥 같은 처녀가 있다오.//천천히 가만가만히 하셔요./나의 손수건 흔들지 마셔요./삽살개도 짖게 하지 마셔요. (野有死麕이어늘, 白茅包之로다. 有女懷春이어늘, 吉士誘之로다. 林有樸樕하여, 野有死鹿이어늘. 白茅純束이로소니, 有女如玉이로다. 舒而脫脫兮하야, 無感我脫兮하고, 無使尨也吠하라.) 이가원 역주 가려뽑은 四書三經 (일지사 판, 1971)125-6쪽

‘위의 시는 남녀가 서로 유혹하는 노래이다. 이 시를 주자학의 시조라는 유학자 주희(朱熹)는 바른 예절을 갖추지 않은 구애를 거절하는 여자의 호소로 보았다’고 이 시를 옮겨놓은 연민 이가원 선생은 소개해 놓았다. 젊은 여자와 남자 사이의 사랑 이야기만큼이나 이 지구 위에서 더 귀하고 따뜻한 게 있을까? 위의 제목은 죽은 노루(野有死麕=야유사균)다. 이 시는 우리들 의 이 지구 삶에 텃밭을 이루는 남녀 사이의 사랑과 관련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시는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꿰뚫어 보고 그것이 깨어졌거나 방해를 받아 외로움에 젖은 사람의 아픔을 노래한다. 시란 노래다. 가슴 속에 품겨있는 저 깊은 마음을 덥히는 사랑 이야기다. 아주 껑충 건너뛰어 말한다면 시란 사랑이다. 사랑이 담겨있지 않은 시는 없다. 공자는 그것을 꿰뚫어 보았던 사람이다.

다시 공자 얘기로 돌아가는데 천자를 중심으로 각 제후국가에서는 각 고을마다 사람들이 부르는 노랫가락들을 수집하는 벼슬아치들이 있어 그 지방마다 다른 특색을 지닌 민요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던 모양이다. 민간인들이 부르는 노랫가락에는 그들이 살면서 겪는 아주 많은 즐거움과 슬픔, 절망과 아픔 그런 사연들이 줄줄이 꿰어달려 노랫가락 속에 담긴다. 주나라 시절에 그렇게 모인 민담들이 1천 여 수가 된다고 책에서는 전한다. 공자가 그 노래 가사들을 정리하여 3백 10수로 정리하였다고 전하는데, 이 노랫말 속에야말로 민간인들이 겪는 가지각색, 애환과 마음자리들이 요연하게 담겨있는 것이다.

1,000여 수나 되는 그 시가들을 가려 뽑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앞의 어느 글에서 나는 사람들은 일생동안 한 말 또 하고 또 한 말 또 하며 그렇게 반복하여 말하며 살아간다고 썼던 적이 있다. 우리가 나날이 먹고 마시는 음식이 실은 그게 그거고 또 그게 그거라는 걸 우리는 애써 참고 견디며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두리번대기 일쑤다. 기독교 성경 가운데 전도서라는 글이야말로 기막힌 슬기를 담고 있는데 그 첫 구절이 아주 기막히다.

“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사람이 하늘 아래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 한 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이 땅은 영원히 그대로이다. 떴다 지는 해는 다시 떴던 곳으로 숨 가삐 가고 남쪽으로 돌아갔다 북쪽으로 돌아오는 바람은 돌고 돌아 제 자리로 돌아온다. ―전도서 1장 2절부터 6절까지(1977년도 판 대한성서공회 발행 공동번역 성서 1076쪽―”

위의 저런 설파야말로 기막힌 시이다. 사람의 사람됨, 그것을 담는 말 그릇은 어떤 것일까? 그것을 나는 시라고 주장할 생각이다. 그리하여 여기서 우리는 우리나라의 위대한 몇몇 시인들 이야기로 넘어갈 차례가 되었다. 참 재미있게도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시대가 어렵고 또 더러우면 더러울수록 위대한 말 그릇인 시가 탄생한다. 참말로 우리에게 더러웠던 시대인 1930-40년대로 이야기를 넘어갈 생각을 덥힌다.

정현기(鄭顯琦)

1942년 경기여주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동대학 석·박사과정 수료
연세대 국문과 교수정퇴(2007), 세종대·성균관대 초빙교수
시집·비평집·논문 외 다수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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