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현기 문학평론가(초월읍 서하리 거주)

4. 시 얘기

중국사람 안핑친이 쓰고 김기협이 옮긴 ‘공자평전’에는 아주 짧은 공자의 자식 가르치는 얘기가 나온다. 공자가 그렇게나 오랜 세월 권력 패들로부터 쫓겨 다니며, 착하게 산다고 할 때 어떤 어려움이 앞길을 가로막는 지를 살피면서도, 끝끝내 우리가 사는 목적은 착한 어짊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그 믿음을 꿋꿋하게 지켰다고 전한다.

그는 쫓겨 다니면서도 읽고 쓸, 책과 대나무 조각들을 마차에 잔뜩 싣고는, 쓸쓸하게 또는 씩씩하게 걸어 다녔다. 누군가 자기를 알아줄 만한 사람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지닌 채 그는 그렇게 터벅터벅 걸었던 것 같다. 틈틈이 쉬면서 따라다니는 제자들이 묻는 물음에 대답하면서 가끔씩 술도 좀 얻어마셨을까? 공자가 술은 퍽 잘 마셨던 것 같다. 그리스 사람 소크라테스는 말년에 올곧은 생각을 지킨다는 죄목으로 독약을 마셨지만!

“동네잔치에서 술을 마시다가 지팡이 짚은 이들이 일어서면 바로 따라 일어섰다.(鄕人飮酒 杖者出 斯出矣=鄕黨)”

제자들은 수시로 공자 그에게 묻곤 하였던 것 같다.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 호랑이 두 마리를 만나자 주먹으로 두 마리 호랑이를 때려죽인 장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자로(子路)였다. 자로가 어깨를 뽐내며 묻는다. “선생님께서 3군을 움직이신다면 누구에게 맡기시겠습니까?” 스승의 대답은 이러했다. “호랑이와 씨름을 하고 배 없이 강물을 건너며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자에게는 절대 맡기지 않는다. 일에 임하면 두려워할 줄 알고 좋은 계획을 세워 이뤄내는 자에게 맡긴다.”

공자는 퍽 슬기로웠고 대도 세었던 사람이었다. 삐딱한 것들이 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착각하는 꼬락서니를 그는 그냥 너그럽게 봐 넘기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런 삐딱한 인생들은 도처에 얼마나 많이 널려 있나? 여북하면 어느 불교 선사 한 분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소리쳤겠나! 산도 물도 다 돈벌이에 이용하려는 인간쓰레기들이 하도 설치니까 그런 말이 나온 거 아니었겠나? 이제 다시 시 얘기로 돌아가야 한다.

시란 무엇인가? 음풍명월이나 읊조리는 게 시(詩)인가? 조선조 한 때 시조(時調)라는 말놀이로, 양반이라는 패들이 모여앉아 읊는 그런 시시한 것들이야, 오늘날 시인들 시에서도 자주 보이지 않나? 공자의 제자들이 모여 시시덕거리다가 어느날 ‘야 우리 스승님께서 자기 자식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셨을까? 우리 한번 알아보자!’ 마침 지나가는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에게 묻는다.

아버님께서 행여 무언가를 가르치신 거가 있나요? 아들은 그들에게 말한다. 종종걸음 치며 마당을 가로질러 가는데 아버님이 부르셔서 묻기를 “얘야 너는 시경을 읽었느냐?”, “아니 못 읽었는데요!”, “으음 그래? 그렇다면 너와 예(禮)를 말할 수는 없겠구나!” 그리고 얼마가 지난 날 다시 아버지께서 묻기를 똑같이 하였다. “예 아버님 시경을 읽었는데요.”, “오오 그래!” 얘기는 여기서 끝이다. 시란 무엇인가?

정현기(鄭顯琦)

1942년 경기여주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동대학 석·박사과정 수료
연세대 국문과 교수정퇴(2007), 세종대·성균관대 초빙교수
시집·비평집·논문 외 다수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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