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현기 문학평론가(초월읍 서하리 거주)

나는 평생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내 필생의 일로 꿈꾸어왔고 또 그 길을 이제까지 가고 있는 중이다. 교사라는 직업, 그러나 아주 어렸을 초중등학교 시절에는 판검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검은 제복에 머리에는 으스스한 모자를 쓰고, 푸른 옷을 입고 겁먹은 얼굴로 쭈그려 앉은 죄수들을 향해, 방망이를 땅땅 치며 ‘이 아무개 그대는 가서 죽어라! 그리고 전, 박 아무개 너희들은 징역 20년 형이다’ 땅땅! 옷차림부터 다른 행색으로 풀빛 죄수복을 입은 같은 사람을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내려다보면서 너는 죽어라! 너는 징역형 5년이다. 어허, 그런데 너는 모셔야 할 늙은 어머니가 있다고 하니 집행유예 6년이다. 생각할수록 통쾌할 일이 아닌가? 어리석기가 하늘을 찌르던 못난이 시절 얘기였다.

그리고는 문학의 길로 삶길을 바꿨는데 이 길이야말로 굶어죽기 딱 알맞은 그런 험하고도 슬픈 길이었음을 차차 점점 깊이 알아가게 된 오늘이다. 단 한 줄의 글이 얼마나 멀리 전해지며 그 글 탓으로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 또한 요즘은 더욱 맛깔나게 실감하고 있다.

‘광주뉴스’의 박해권 사장을 안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요즘 며칠 동안 누군가에게 내 일거리를 좀 달라고 부탁하는 꿈을 꾸곤 했는데 어제 문득 이 박 사장을 만난 김에 내게 당신 신문에 연재로 어떤 칼럼 하나를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하 그런데 그가 흔쾌하게 그러라고 허락한다. 이 무슨 행운이냐? 무얼 이어서 쓸까? 그 궁리로 꽤 많은 고심을 하였지만 먼저 그 제목정하는 것부터가 망망대해다.

‘인문정신을 찾아서’, ‘말글 마음 찾기’, ‘퍽 시시한 시 이야기’ 이것저것 생각의 징검다리를 건너뛰다가 일단 저렇게 정해놓고 이 칼럼을 시작한다. 내년 초면 내가 쓴 평론집이 열다섯 권 째 나올 터다, 제목이 ‘한국인 세 사람’이다. 사람들은 평생 한말 또 하고 또 한말 또 하며 살아간다. 먹고 마신 밥과 물을 평생 먹고 마시듯이.

오늘은 기원전 489년 전 중국 노나라에서 벼슬살이도 좀 하며 살았다고 전해지는 공자(孔子)의 아들 가르친 이야기 하나를 전하고자 한다. 세계 4대 성인에 속한다는 공자 그 자신의 생애는 아주 흥미롭다. 그는 나이 들어 근 15년 동안이나 이리저리 쫓겨 다니며 ‘상갓집 개’라고까지 비웃음 받으며 살았던 그야말로, 오늘날 말법으로 따지면 극좌파에 속하는, 그런 처량한 선생이었다.

성인의 생애가 다 그렇듯이 지난 세월 근 2천 5백여 년 전에 살았던 공자가 그의 외아들 백어(伯魚)에게 가르쳤다고 전해지는 이야기 하나는 퍽 짧으면서도 깊이가 있다.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백어에게 공자가 물었다. ‘너는 시경을 읽었느냐?’, ‘아니요’, ‘그러면 너와 예(禮)를 이야기 할 수는 없겠구나’ 그리고 나서 얼마 뒤 다시 묻는 그 말에 백어는 시(詩)를 읽었다고 대답한다. 그 자식에게 그러면 너와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구나! 했다고 전한다. 백어는 일찍 죽었단다. 공자가 그렇게 중요하게 본시란 무엇일까?

정현기(鄭顯琦)

1942년 경기여주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동대학 석·박사과정 수료
연세대 국문과 교수정퇴(2007), 세종대·성균관대 초빙교수
시집·비평집·논문 외 다수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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