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한량들은 술자리의 시중을 드는 기생을 '말을 헤아리는 꽃'이라는 뜻으로 해어화(解語花)로 불렀다.

해어화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당나라 황제 현종에 의해서다.
현종은 처음 제위에 올랐을 때는 정사에 충실해서 훌륭한 치적을 많이 쌓은 현군이었지만, 말년에 양옥환(양귀비)라는 여인을 알고 부터 사랑놀이에 빠져 결국 당나라를 망하게 한 망국의 제왕이다.

양귀비는 원래 현종의 여덟째아들은 수왕의 신부였다. 그런 아들의 신부, 즉 며느리가 될 여자를 가로채 후궁으로 삼은 현종은 어느 초여름날, 양귀비를 비롯한 여러 궁녀들을 데리고 태액지라는 연못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 당시 태액지 연못에는 연꽃이 막 피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연못 가득 향긋한 향기가 가득했는데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현종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연꽃을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옆에 있는 양귀비를 가리키며 말했다.

"연꽃의 아름다움도 말을 헤아리는 이 꽃에 미치지 못하지 않느냐?"

한마디로 양귀비의 아름다움이 연꽃에 비유할 수 없을 만큼 빼어나다는 말이고 현종은 그만큼 양귀비에게 푹 빠져 있음을 스스로 내보인 말이기도 하다.

이런 현종이었으니 '마외(馬嵬)의 비극(양귀비 교살 사건)' 이후 그녀를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황제의 심정을 이해할 만 하다. 그래서 백거이를 비롯한 많은 시인들이 두 사람간의 사랑을 읊었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현종과 양귀비간에 '사랑'을 운운하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김빠진 맥주를 마시는 것처럼 밍밍한 감이 없지 않다. 아니 오히려 불쾌감마저 든다. 왜냐하면 아들의 신부를 가로챈 부도덕성에서부터 결국엔 안록산 반란의 희생양으로 교살했다는 사실(정치적으로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이 부적절한 사랑의 비극적 종말을 보는 것 같고 또 현종은 이미 결혼한 양귀비의 셋째 언니 괵국부인( 國夫人)과 간통까지 일삼았다는 사실에 이르면, 한없이 순결해야될 사랑이 그만 너저분한 육체의 향락으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해서 감동이 따르기 마련이다. 사랑을 주제로 한 수많은 문학 작품들이 이를 반증한다. 뒤집어 말하면 감동이 없는 사랑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현종에 있어 양귀비는 기쁨조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한 여인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양귀비를 가리켜 생겨난 해어화라는 말이 우리 나라에 건너와서는 기생을 일컫게 되었음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기생은 그야말로 유흥을 돋구는 놀이개감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요즘 TV 연속극을 보면 온갖 치정과 불륜이 횡행하고 그것이 화려한 로맨스로 둔갑하여 포장되고 있다. 부자지간에 빼앗고 자매를 두루 탐닉한 현종의 스캔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말이다.

현종의 불륜이 세속의 자질구레한 도덕 따위에 구속받지 않는 황제라는 지위 때문에 간과되고 오히려 시인들로부터 사랑으로 포장되었다면, 요즘 TV 연속극은 시청률이라는 권력 앞에 도덕성은 함몰되고 부귀영화를 쫓는 신데렐라 군상에 사랑은 그저 화장품처럼 살짝 덧칠해놓은 느낌이다.

남녀간에 사랑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감정이다. 결코 훼손되어서도 안되며 더더구나 세상 이해타산 따위에 떠밀려 푸대접받는 일은 정말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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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말씀>

저는 가족과 함께 5일부터 12일까지 피서를 떠납니다. 바닷가로 가서 그간 하지 못했던 낚시도 원 없이 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확 풀어버릴 작정입니다.(벌써부터 두근대는 군 요)
해서 부득이 '효월의 고전(古典) 드라이브'는 한 주(8월 2째 주)는 쉬고자 합니다. 미리 써놓고 가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여기저기 맞물린 일 때문에 아무래도 무리라는 판단이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양해 바랍니다.

-효월 드림-

* 1961년 5월 생
월간 녹색지대 前 편집장 * 역사·무협 소설가
장편 「황하(3권)」 「刀劍天下(6권)」등이 있고
단편 「누렁이」「보금자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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