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위가현(광남고등학교 1학년)

7월 23일에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이신 김군자 할머니께서 별세하셨다. 나는 소식을 듣고 그날 저녁, 분당 차병원에 가서 할머니를 뵙고 온 며칠 뒤에 나눔의 집 법당에 안치된 할머니를 뵈러갔다.

장례식장을 갔다 온 후에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왜 마음이 불편한지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할머니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슬픈 마음을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얼마 후에 나눔의 집에 방문한 후에야 내 가슴이 답답했던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평소 나눔의 집에 봉사를 하러 간다. 생활관 청소를 하기도 하고, 역사관 해설을 들으며 공부하고 역사관 해설사 자원봉사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눔의 집에 방문한지 꽤 되었지만, 할머니들을 뵌 적은 별로 없다. 생활관에 들어가서 할머니를 뵐 때도 안쪽까지는 들어가지 않고, 거실에 나와 계신 할머니들만 뵙곤 했다. 박옥선 할머니께서는 찾아뵐 때 마다 문 밖까지 배웅해주시고, 항상 손을 잡아주신다.

정복수 할머니는 몇 달 전 생활관을 청소할 때 잠깐 인사드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몇 마디 대화조차 나누지 못했었다. 오늘 찾아뵙고 손을 잡아드리며 인사하고, 대화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계속 옆에 있었다. 그리고 떠날 때쯤에 인사를 드리니 내 손을 꽉 잡으시고 가지 말라고 하셨다. 거동도 불편하신 분이 내 손을 세게 잡을 때,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옥선 할머니께서는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나눔의 집 효잔치에 나오셔서 노래 부르시고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신다는 말을 듣고 너무 슬펐다. 할머니들께서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나는 사실 김군자 할머니가 어떤 분인지 자세하게 알지 못했다. 그저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매우 슬픈 마음이었다. 그런데 나눔의 집 생활관에서 김군자 할머니의 방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지난번에 김군자 할머니의 방을 청소했던 기억이 났다.

나눔의 집에 봉사하러 갔을 때 요양사들께서 김군자 할머니는 까탈스러우시니 빈 방과 거실, 식당만 청소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를 부르시더니 원래 할머니께서 누가 방에 들어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데, 오늘 온 학생들이 참 마음에 들고 예쁘다며 방을 청소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김군자 할머니 방을 청소하러 갔었다.

가구의 먼지와 방바닥을 닦는데 할머니께서 구석구석 잘 닦으라고 하시며 혼을 내셨다. 무서워서 더 열심히 닦았던 기억이 난다. 방 청소를 마치고 할머니께 인사드리고 나가려는데 할머니께서 청소 잘했다고 칭찬해주시며 예뻐해 주셨다. 당시 나는 청소를 하며 다른 할머니들께는 말을 붙여보았지만, 김군자 할머니가 나를 혼내시는 것이 무서워 말을 먼저 건네지도 못했다. 그런데 청소를 마치고 나에게 해주신 칭찬 한마디에 가슴이 찡했지만, 할머니의 성함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몇 달 전에 나를 혼내시고 칭찬도 해주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김군자 할머니라는 사실을 알고 눈물이 났다. 할머니와 함께한 기억이 떠오르며 가슴은 더욱 아파왔고, 동시에 후회도 남았다. 그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 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후회스럽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할머니를 뵌 시간은 매우 짧았지만, 참 좋은 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할머니들이 항상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눔의 집에 방문해서 형식적인 봉사가 아닌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할머니들과 나누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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