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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륭의 이유가 쇠망의 원인이 된다<기고> 현광식 광주YMCA 지도교수

진시황제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약 500년간 중앙아시아의 키르키스 고원에서 번성한 흉노족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다. 기원전 60년경 내부에서 후계자 다툼이 벌어져 중국으로 남하한 흉노족은 한족에 융화되어 갔지만, 나머지 북 흉노는 몽골 등지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후 후한의 원정군에 쫓기게 된 흉노족은 어느날 갑자기 중국사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와 때를 같이해 유럽에서 갑자기 훈족이 나타났다. 이 훈족이 바로 흉노족이었다.

기원후 1세기 중반까지 볼가 강 유역에 머물던 훈족이 서진(西進)하자, 이에 밀린 게르만의 일족인 고트족은 로마 국경 내로 남하를 시작했다. 이것이 게르만족 대이동의 시작이며, 이미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절 로마와 게르만족 사이의 전투가 벌어졌다. 그 후 251년 데키우스 황제가 고트족과의 싸움에서 죽었고, 378년에는 발렌스 황제가 고트족에게 쫓기다가 불에 타죽는 일까지 벌어졌다.

여기에 ‘기독교의 역할’이 로마의 호전성을 서서히 줄여갔던 것도 영향을 미쳤던 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기독교의 성직자들은 종교의 지상 목표를 내세의 행복에 뒀던 만큼, 지배와 점령의 적극적인 정책보다는 인내와 사랑을 설파했고, 여기에 종교적 파벌이 겹치면서 황제의 관심은 전쟁터가 아닌 공의회에 쏠리게 되었다.

물론 기독교의 순수하고 참된 감화력이 북방의 야만족들을 개종시키고, 그들의 흉포한 기질을 누그러뜨림으로서 오히려 로마 제국의 급격한 멸망을 늦췄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훈족을 피해 남하한 게르만족은 로마의 문명과 기독교를 접하면서 정착과 이동을 반복했다. 그들은 마치 분출된 용암이 서서히 굳듯이 도시를 형성했고, 기독교를 만나 순화되었다. 이른바 ‘유럽’은 그렇게 탄생했다.

로마의 쇠망에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건축물이 와르르 무너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 분명 있다. 그래서 우리는 로마 제국이 왜 멸망했는가를 묻기보다는 오히려 오랜 존속에 놀라는 것이다. 로마제국은 인과론적으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무게 때문에 내려앉은 것이다.

흥륭의 극점과 쇠망의 개시는 공교롭게도 겹친다. 흥륭의 절정에 도달할 때, 동시에 쇠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로마를 번영시킨 사건과 사건이, 그리고 로마를 흥하게 한 국면과 국면의 누적이, 장기지속의 과정 속에서 결국 로마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내려 앉혔다는 역설적인 사실에 주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 ‘자기 내면의 로마’와 마주치게 될 때 <로마제국쇠망사>의 역설은 그 고비를 지혜롭게 넘길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로마제국쇠망사는 에드워드 기번이 2세기 초 로마 제국의 최대 판도를 이룩한 제11대 황제 트라야누스부터 1453년 동로마 제국 멸망에 이르는 1400년간의 역사를 박학과 탁견, 발군의 역사적 상상력으로 재현한 역작이다. 이 책의 원전은 총 6권이다. 기번은 원래 트라야누스 대제 때부터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서기 476년까지의 궤적을 담은 3권까지만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독자들의 끊임없는 요구 때문에 동로마 제국의 멸망 시기까지 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저널리스트인 데로 손더스(Dero A. Saunders)가 이 총 6권의 방대한 원전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한 권으로 축약했다. 그는 1권에서 3권까지, 즉 서로마 제국의 멸망까지를 15장으로 정리하고, 동로마 제국의 쇠망을 다룬 나머지 3권을 마지막 한 장으로 요약했다. 그 이유는 로마의 법통이 서로마 제국에 있고, 기번 자신도 본래 트라야누스 황제로부터 서로마 제국 멸망 때까지만 집필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기번은 1776년 2월, <로마제국쇠망사> 제1권을 발간했다. 그 해는 1775년에 시작한 미국 독립전쟁의 와중에서 미 합중국이 독립 선언을 한 해이자,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발표한 해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1788년에 드디어 <로마제국쇠망사> 전 6권이 완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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