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조나라 무령왕(武靈王)은 고정관념을 깨는 이른바 상식에 도전하는 개혁가로 유명하다. 물론 생존경쟁이 치열했던 전국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선 어느 나라 왕이건 개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대다수 사가(史家)들은 무령왕의 개혁에 관한 한 시대 상황에 처한 선택이었기보다는 개인적인 성향에 따른 영단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호복령이다.
호복령이란, 호는 오랑캐를 뜻하는 것이고, 호복이란 오랑캐의 복장을 말한다. 그러니까 호복령은 국민에게 오랑캐 복장을 하라는 명령인 것이다. 중국식 복장은 원피스형이어서 말을 제대로 탈수가 없는 반면에 호복은 투피스형이어서 말을 타기에 용이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말하자면 부국강병의 기초로 복장 개혁부터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식주 중에서 의(衣)의 변혁을 강요하는 것은 문화혁명이나 마찬가지이고 보면 반대 여론이 들불처럼 일어나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중국인들은 오랑캐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야만스런 종족으로 여기는 터에 그 오랑캐 옷을 입으라고 했으니 반대가 오죽했겠는가? 당연 재상은 거품을 물었고 왕족은 물론 태자 장(章)까지 반대하고 나섰으며, 대소 신하들의 반대 상소문은 산더미처럼 쌓였다.

하지만 무령왕은 본보기로 태자를 폐위하면서까지 고집스럽게 밀어붙여 결국 호복령을 성사시키고 만다.

그런데 태자를 폐위하는 무리수까지 쓰면서 호복령을 관철시키려고 한 무령왕의 실제 복안은 무엇이었을까? 단지 호복이 말타기 좋다는 이점 때문에 그랬을까?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무령왕은 따로 뜻한바가 있었던 것이다.

무령왕은 왕위에 오른 후에 줄곧 북방 오랑캐 정벌을 꿈꾸고 있었다. 물론 오랑캐 정벌은 무령왕뿐만 아니라 선대부터 꿈꾸던 숙원사업이었다. 실제로 선조 양왕(7대 조양자)은 누이를 오랑캐 대나라 왕에게 시집보내 환심을 사놓고 그 대나라 왕을 쳐서 멸망까지 시켰지만 끝내 지배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또 다른 오랑캐나라인 증산국도 위나라에게 멸망당했지만 끈질기게 부활해서 지금은 건재하고 있었다.

이 두 오랑캐나라를 멸망까지 시켜놓고 선조 양왕이나 위나라는 왜 끝내 지배하지 못했을까?

그 원인을 무령왕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원인은 다름이 아니라 선조 양왕이나 위나라는 대나라와 증산국 사람들을 야만인이라 멸시하고 지배자로 군림하려고 들었기 때문에 그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끈질긴 저항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쪽 사람들을 깔보기보다는 서로 대등하게 천하를 차지하고 함께 누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습속이 달라 껄끄럽다면 이쪽에서 먼저 그쪽 좋은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쪽 좋은 문화를 그쪽으로 전수해줌으로서 서로 가슴을 열 수 있다고 판단했으며, 그 일환으로 호복령을 발한 것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 계획은 크게 성공을 거두어 무령왕은 북방 오랑캐를 무리 없이 다스리게 되었다.

문화 인류학자들이 <문화는 차이일 뿐 우열은 있을 수 없다>고 제창한 것이 20세기 초엽이고 보면 무령왕은 벌써 2천년 전에 그 같은 생각을 한 셈이었다.

오늘 신문을 보니까 우리 나라 개신교 해외선교사들이 예전 서구 선교사들이 했던 식민지 사관의 그릇된 선교를 그대로 되풀이함으로서 갖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기사가 있었다. 말하자면 현지 문화를 도외시하고 일방적인 기독교 문화만 우월시 한다는 말이다.

솔직히 우리 나라 개신교는 비약적인 발전(성도 숫자상)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민 저변에 제대로 뿌리 내리기는커녕 부초처럼 붕 떠있는 감이 없지 않은데, 그 원인을 개신교가 우리 민족의 전통을 깡그리 무시한데 따른 결과라고 보는 신학자들이 많다. 인도 종교인 불교가 우리 나라 민족 종교라 불릴 만큼 승화 발전한 것과 비교해보면 그 신학자들의 시각이 터무니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상대를 존중할 줄 알 때 나도 존중 받는 것이 아닐까?
상대를 멸시하면 돌아오는 것은 반발심 뿐이다. 2천년 전 무령왕이 이미 깨우쳤고 또 보여주었던 만고불변의 진리다.

* 1961년 5월 생
월간 녹색지대 前 편집장 * 역사·무협 소설가
장편 「황하(3권)」 「刀劍天下(6권)」등이 있고
단편 「누렁이」「보금자리」등이 있다.
저작권자 © 광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