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칼럼> 최병길 前광주로타리클럽 회장

오래 보아야 한다. 논을 감아야 한다. 정말 소중한 것은 그때야 보인다. 함께한 시간만큼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오래 보아야 보이는 것이 있다.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것이고 제대로 알기란 쉽지 않다. 오래 알아봐야 하는 그런 시간을 보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많다.

눈을 감고 보면 어머니는 존재하는 모든 것과 분리할 수 없다. 어머니가 있기 위해서는 우주가 있어야 한다. 해가 있어야 하고, 별이 있어야 한다. 물이 있어야 하고, 공기가 있어야 하고, 나비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이는 어머니가 낳는 동시에 우주가 낳는다. 사람은 그렇게 누구나 우주가 피우는 꽃이다. 자연이 가르쳐준 대로 삶과 생명을 일구는 농부의 시간 “서른 번의 겨울이 가고, 서른한 번째 봄이 왔다.” 초자연적인 삶을 일구면서 그동안 창고 속에 차곡차곡히 쌓아두었던 수확물 중에서 43덩이의 알곡만 골라 넣은 진품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공자께서 들려주었다. “옛것을 익혀서 새것을 뽑아낸다면 충분히 스승이 될 만하다.”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우리는 오래된 것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려 한다.

작가는 오래보고 오래삭여야 그 본질을 볼 수 있다는 지극히 자연적인 시간을 가지려 했다. <무엇이 우리를 살게 하나?> 한 스님이 강연을 끝내고 돌아왔는데 늦은 시간에 전화가 왔다. 강연을 들은 사람이라며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다. 모두가 날 배반했고 더 이상 살아갈 용기가 안 나 지금 목을 매서 죽으려 한다. 죽기 전에 한 가지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강연에서 나무아미타불, 하고 염불을 하고 죽으면, 그것이 단 한 차례라도 그것으로 죽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이 정말인지 알고 싶다.” 스님을 대답했다.

“나무아미타불 정도로는 안 될 것이오.”, “사람들이 당신을 버리고 배반했다고 하지만 당치도 않은 말이다. 지금 당신은 남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배반하려고 있지 않은가? 당신이 죽을  생각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단 1초도 멈추지 않고 어렵더라도 부디 이겨내 달라고 극복을 해달라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는 이가 있는데, 당신에게는 그분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봐라. 지금 당신 가슴이 뛰고 있지 않느냐? 숨이 들락날락하지 않느냐? 그렇게 힘을 내라며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하고, 숨을 쉬게 하는 그것을 일러서 부처라고 한다. 그 밖에 어디에 부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목소리를 들어라” 어느 사찰 법당에서 쩌렁쩌렁 울렸던 스님의 이야기가 가슴에 스친다.

자녀의 대학입학을 기원하는 법당에서 신도들을 향해 이절에는 부처가 없다. 네 집에 있는 네 자식이 부처요, 네 남편들이 부처니 서둘러 돌아가 부처들에게 잘해라 라는 호통을 치던 스님이 생각난다. 부처란 깨달은 자의 결과물이 아니다. 대자연을 이루는 모든 것이 부처라 한다. 아오야마는 비구니 스님이다.

그 스님은 자신의 다른 책에서도 일관되게 부처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을 살게끔 하는 그 무엇을 이르는 말이라고 쓰고 있다. 지구는 천국이다. 때로는 우리의 소원과 달리 가뭄이 들고 홍수가 나지만, 지구는 천국이다. 지구가 극락이다.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곳이 어딘지 말해 보라. 아마도 그곳은 상상 속에 혹은 죽은 뒤에 가는 곳이리라. 그렇다면 당신도 늦은 밤에 스님에게 전화한 사람과 다르지 않다. 불교가 생기며 대자연보다 마치 부처가 더 귀한 것처럼 여겨지게 됐다. 그리고 그 부처는 깨달은 자라는 인간의 행복과 자유만을 이야기하는 오류를 낳았다.

불교는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대자연이 없이는 누구도 살 수 없다. 불성이란 대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대자연은 모든 것을 품고 산다. 그 흔한 텃새인 딱새소리도 두 가지의 소리로 지저댄다. 평상시와는 달리 번식기때 지저대는 소리가 틀리다. 오래 들어봐야 들을 수 있다. 오묘함이 깃든 자연의 소리도 막연히 들리는 것 같지만 오래 듣다보면 감성이 다른 소리도 듣고, 휘어진 소나무의 모습도 오래보면 자연의 풍파 속에 세월을 이겨낸 의지와 용기가 보이게 된다.

사람역시 오래 동안 곁에 둔 사람의 사랑스러움과 인간적인 내음이 나는 것은 오래보고 오랫동안 느껴본 속에서 삶의 체취를 느낀다. 수필의 한 단원을 펼칠때마다 대자연의 숨소리를 들으며 인간의 사랑스런 본질 속에 빠져드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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