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드라이브는 시조(時調) 몇 편을 먼저 감상하고 출발했으면 싶다.

1)
녹이상제(綠耳霜蹄) 살지게 먹여 시냇물에 싯겨 타고
용천설악(龍泉雪鍔)을 들게 갈아 두러메고
장부(丈夫)의 위국(爲國) 충절을 세워 볼가 하노라

◇ 녹이, 상제 - 옛날 준마들의 이름 ◇ 용천 - 보검
◇ 설악 - 날카로운 칼 ◇ 들게 갈아 - 잘 들게 갈아
◇ 두러메고 - 둘러메고 ◇ 위국 - 나라를 위한

2)
가마귀 싸호는 골에 백로(白鷺)야 가지 마라
성낸 가마귀 흰 빛을 새오나니
창파(滄波)에 조이 씻은 몸을 더러일가 하노라

◇ 새오나니 - 시기하나니 ◇ 조히 - 깨끗이

3)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萬壽山) 드렁츩이 얽어진들 긔 어떠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百年)까지 누리리라

◇ 만수산 - 개성 서쪽에 있는 산 ◇ 긔 - 그것이

4)
이 몸이 죽어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塵土)되어 넋이라도 잇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가쉴 줄이 이시랴

◇ 진토 - 티끌과 흙 ◇ 가쉴 줄 - 변할 줄

5)
선인교(仙人橋) 나린 물이 자하동에 흐르르니
반천년(半千年) 왕업(王業)이 물 소래 뿐이로다
아희야 고국(古國) 흥망(興亡)을 물어 무엇 하리오

◇ 개성 자하동에 있는 다리 ◇ 반천년 왕업 - 고려
◇ 소래 - 소리 ◇ 고국 - 옛 조국 즉 고려 왕조

첫 번 째 시조는 고려 말 장군이었던 최영(崔塋)이 지은 시조다. 최영 장군은 명(明)나라를 치려다가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으로 실패하고 후에 이성계 일파에게 피살당했다.

두 번 째 시조는 역시 고려말로서 기세 등등하던 이방원(이성계의 아들, 조선 세 번 째 왕(태종))이 주도하는 연회에 정몽주가 참석하려하자 그의 어머니가 부른 노래(시조)이다. 그러니까 까마귀는 이방원을 뜻한다.

세 번째 시조는 이방원이 정몽주의 뜻을 떠보기 위한 하여가(何如歌)이고 네 번 째 시조는 정몽주가 화답한 일편단심가다. 이후 정몽주는 이방원에게 선죽교에서 피살당했다.

다섯 번 째 시조는 조선 개국 1등 공신인 정도전(鄭道傳)이 지은 시조이다. 정도전은 소위 말하는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참수 당했다.

얼마 전에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으로서 현재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안희정씨가 면회 온 몇몇 지인들에게 태종의 양위(讓位) 파동을 거론했다고 한다.

태종은 제위 기간 동안 모두 네 번을 왕위를 세자에게 물려주겠다는 소위 양위 파동(세 번은 양녕대군이었고, 마지막은 세종인 충녕대군이었다)을 일으켰는데, 이 세 번의 파동(네 번째는 진짜였으므로 제외)을 통해 왕권에 위협을 가할 만한 70여명을 제거해 버렸다.

안희정씨는 이를 빗대어 노 대통령도 대선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자리를 버리는 소위 양위 파동을 두 번 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두 번째는 탄핵에까지 이르게 한 재신임 파문이 그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파동으로 정몽준(희한하게 이방원이 첫 타켓으로 삼았던 정몽주와 이름도 비슷하다)의원을 비롯한 이인제, 이회창, 후보단일화 세력이 몰락했고, 두 번째 파동을 통해 최병렬, 조순형, 추미애로 대표되는 야당 중진들의 몰락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안씨는 태종의 양위파동에서 보듯이 노 대통령도 아직 한 번의 파동이 더 남았다고 전망했다는 것이다.

그의 전망이 맞아떨어진다면, 다음 몰락 대상은 누굴까? 수구보수세력을 의미하는 것일까? 열린우리당 내의 일부 까부는(?) 의원들일까? 아니면 또 다른 누구?

그가 더 이상 말하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어째든 안씨의 그러한 전망은 왠지 어느 세력에겐가 보내는 협박성 경고로 들린다.

이 방원은 모두 아시다시피 죽여 ‘버리기’ 선수다.(그것을 왕권 안정을 시킨 업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하여가로 정몽주에게 칡덩쿨처럼 같이 살아보자고 했지만 거절한 정몽주는 물론이고 그와 뜻을 같이해 조선 개국에 공헌한 사람들 치고 제명에 살다간 사람은 거의 없다. 처갓집은 아예 씨를 말려버렸고 사돈까지 죽여버린 그였으니 다른 공신들은 오죽했으랴.

그런 태종이 일으킨 양위 파동과 노 대통령의 일련의 행보를 빗댄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으면 싶은 게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안씨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왠지 께름칙하다.

이번 광역단체장 재보선 선거에서 열우당은 야당에게 4:0 완봉패를 당했다. 총선 승리의 축배를 터트린 지가 불과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하기사 재위기간 내내 ‘버리기’를 업으로 삼은 이방원 같은 사람과 닮은꼴 정치를 한다면 누가 그 꼴을 더 보고 싶겠는가?
저작권자 © 광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