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칼럼> 최병길 前광주로타리클럽 회장

이토의 만주행에 거사를 준비한 독립투사는 다섯 사람이었다. 김성옥, 유동하, 조도선, 우덕순, 안중근 제1차는 장춘역, 2차는 관성자, 3차는 채가구, 4차 마지막은 하얼빈역 이었다.

며칠 전 거사를 모의하던 술집에서 러시아군3명에게 폭행을 당하던 동양인이 있었다. 이때 안중근이 나서서 3명의 러시아군인을 단숨에 쓰러트린다. 안중근의 완력도 대단했던 것 같다. 동양인은 일본인 이었다. 고맙습니다. 하면서 큰일 날 뻔했다며 명함을 한 장 건네주었다. 이름은 아라이 신문기자였다.

1909년 10월 26일 아침 7시 하얼빈역에는 러시아군대, 헌병 일본군인과 헌병, 의장대, 군악대, 일장기를 든 일본거류민단들의 수천명이 운집했다. 더욱이 청군경찰들이 동원되어 검문검색이 이루어졌다. 청군경찰의 저지를 떨치고 안으로 들어간 안중근이 러시아 헌병에게 제지를 당했다.

안중근은 일본의 오사카 아사히신문 특파원이라고 소리를 지른다. 플랫폼으로 들어가는 순간 러시아 헌병이 몸수색을 해야 한다며 저지할 때 며칠 전 술집에서 구해 주었던 진짜 아라이 신문기자가 완장을 두른 채 이 광경을 목격하고 러시아헌병에게 이 사람은 나와 함께 회견장을 갈 기자이니 무사통과해도 무방하다며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아라이 신문기자는 취재가 바쁘다며 회견장으로 들어갔다. 순간 안중근은 재빠르게 일장기를 든 일본 거류민들의 대열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위치가 좋지 않아서 다시 2열 횡대로 늘어서 있는 러시아 의장대 뒤로 자리를 옮겼다. 정확히 9시 25분 이토 히로부미가 전망차에 모습을 나타냈다. 백발에 흰 수염을 기른 자그마한 체구의 노인이 거만스럽게 내려서자, 역 안에 있던 환영객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잠시 후 그들은 그들의 환호성이 이토의 장송을 위한 장송곡으로 변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천지가 진동하도록 아우성을 쳤다.

조선 침략의 원흉이며 일본제국의 천황 다음 가는 거물 이토 히로부미가 중산모를 벗어 흔들며 천천히 플랫폼을 밟았다. 플랫폼에 내린 이토는 러시아의 북경 주차공사 코르스도예프, 일본 총영사 가와카미, 만철이사 다나카, 궁내부대신 비서관 모리 등의 호위를 받으며 흡족한 표정으로 의장대 앞을 지나 각국 영사관 직원들이 서있는 앞으로 걸어가 의례적인 인사를 했다. “코코흐체프 각하 대련, 여순, 봉천을 두루 들러서 왔지만 이처럼 열광적인 환영은 받아보지 못했소”, “우리 러시아 제국 군대는 각하께 최대의 경의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토 각하, 이제 미국만 동의를 하면 이 하얼빈 땅에서 청국 군대의 모습이 사라질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환호의 소리가 다시 크게 울렸다.

이토는 거만한 미소를 흘리며 다시 모자를 흔들었다. 이 때 러시아 의장대와 장교단인 도열한 사이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안중근이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의 모습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자 러시아의 의장대를 밀치며 번개처럼 뛰어나갔다. 그리고 세발의 총성이 울렸다. ‘탕, 탕, 탕” 이등박문이 세발의 총탄을 맞고 쓰러진 것을 확인한 안중근은 계속해서 이토의 좌우에 있던 가와카미 총영사, 나나카 만철이사, 모리일본 궁내부대신 비서관을 단 1발씩의 총알로 쓰러뜨렸다.

7연발 브라우닝 권총이 6발의 총알을 내뿜은 것은 단 몇 초 동안의 일이었다. 그 여섯 발의 총탄이 단 한발의 실수도 없이 모두가 명중한 것이다. 다만 이등박문에게만 세발을 쏜 것은 우리민족의 피맺힌 한을 덤으로 두발을 더 쏘았을 뿐이었다. 권총을 명중시키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중근이 여섯 발 모두를 명중시켰다는 것은 그의 정신력이 얼마나 강인한가를 말해 주는 것이었다.

그때 현장을 목격한 러시아 장교들은 그의 귀신같은 사격술에 정말 놀랐다고 술회했다. 환영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마침내 이등박문이 세발의 총알을 맞고 가슴을 움켜쥔 채 고목처럼 쓰러지는 순간 안중근은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러시아 헌병대 니키호로프라는 자가 안중근의 다리를 걸어 같이 넘어지면서 안중근을 붙잡았다. 안중근은 한발의 총알이 남은 권총을 순순히 내주었다. 그리고는 그들 러시아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또다시 “까레 후라(대한만세)!”를 삼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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