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단부(單父)라는 곳에 여공(呂公)이라 불리며 세인으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있었는데 여공에게는 아들 둘과 딸 셋이 있었다.

여공은 딸 셋 중에서 둘째딸 아후(娥姁)를 특히 이뻐했다. 아닌게 아니라 아후는 온화한 성격에 미모도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지혜도 남달리 뛰어난 딸이었다. 그래서 그는 평소 “아후는 인물과 재능이 더할 나위 없는 애다. 평범한 남자에게는 결코 시집 보내지 않겠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여공은 뜻하지 않은 분쟁에 휘말려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 피신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고향에서 존경받고 떵떵거리고 살던 사람이 졸지에 끼니 걱정하면서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평소에 덕망이 높았기 때문에 그가 고향을 떠나자 평소 알고 지내던 타지 지인들이 서로 자기 집으로 맞아들이려고 했다. 여공은 고민 끝에 고향과 거리가 먼 패의 현령(懸令)에게 의탁하기로 마음먹고 그리로 갔다.

여공 가족이 패에 도착하자 현령은 몸소 찾아와 여공을 위로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현령은 여공의 둘째 딸 아후를 보고는 그만 반해버렸다. 그래서 자신은 아직 결혼하지 않았으니 둘째 딸을 자신에게 시집 보내달라고 여공에게 청혼하기에 이르렀다.

청혼을 옆에서 듣고 있던 여공 부인은 뛸 듯이 기뻤다. 여씨 집안이 명망가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쫓기는 신세니 현령에게 딸이 시집간다면 딸의 일신도 그렇고 덩달아 가족들도 편해질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공은 신세를 질 현령의 청혼을 한마디로 거절해버렸다.

“뜻은 감사합니다만, 딸자식 결혼은 달리 생각하는 바가 있으니 인연이 없다고 여겨 주십시오.”

현령은 내심 서운했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몇 칠 후, 현령은 여공을 지역 유력가들에게 소개시켜주기 위해 연회를 베풀었다.

지역 유력가들은 여공의 명망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터라 이 기회에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물론 그들은 여공이 현재 처한 현실을 감안해 얼마간 재물을 준비해 왔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손님들이 몰려들자 넓은 현령의 저택이지만 모두 수용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선물 접수 일을 보고 있던 서하라는 현의 서기는 1천 전 이상인 사람만 안으로 들여보내고 그 이하인 사람은 밖에 앉도록 조처했다.

그러던 중에 서기에게 한 건장한 사내가 다가왔다. 사내는 정장(亭長 : 마을 창고지기)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 서기와는 한 동네 친구사이였다. 그는 1천 전 이하 선물을 준비한 사람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설명을 듣자 자기 명함에다가 <진상(進上) 1만 전 designtimesp=5052>이라고 아무렇게나 휘갈겨 써서 주고는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서기는 난처했다.

사내와 친구지간이기는 했지만 사내는 마을에서 소문난 망나니였다. 사람을 두들겨 패서 늘 말썽이었고 하루도 술에 절지 않은 날이 없었으며, 계집질은 혼자 다하고 다니는 그야말로 내 놓은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이 1만 전 진상이라고 썼으니 그건 보나마나 공수표였다. 그렇다고 괜히 못 들어가게 막았다간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서 할 수없이 서기는 사내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여공은 우연히 그 명함을 보았다. 자신에게 1만 전이나 진상하겠다고 하니 호기심이 든 그는 서기를 찾아가 명함 주인공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서기는 아뿔사, 속으로 외치면서 이실직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자는 그저 농담으로 쓴 것뿐입니다.”

하고 만나는 것을 만류했다. 그러나 여공은 꼭 만나고 싶다며 사내를 데려오게 했다. 서기는 어쩔 수 없이 사내를 데리고 왔다.

여공은 사내와 몇 마디 나눠보더니 방으로 데려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자신의 둘째 딸과 결혼할 의사가 없느냐고 물었다. 물론 사내의 입은 함지박만 해져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후의 미모는 이미 마을에 소문이 쫙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들은 여공 부인과 아후는 놀라자빠질뻔 했다. 현령의 청혼은 마다한 사람이 천하의 망나니에게 시집보내려는 까닭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였다. 더군다나 그 사내는 결혼은 안 했지만 자식이 있는 홀아비와 다름없었다. 당연 두 여자는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남편이자 아버지에게 항의했다. 그러나 여공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아후는 아버지 뜻을 굽힐 수 없음을 알고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신다. 그런데도 굳이 그 사내에게 시집보내려는 것은 분명히 뭔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아후는 사내에게 시집을 가서 내조를 아끼지 않았다. 사내도 그전같은 망나니 생활을 접고 예쁜 부인이 있는 집으로 퇴근과 동시에 달려왔다.
이 사내가 바로 훗날 한(漢)나라를 세운 한고조 유방(劉邦)이다.

얼마 전, 모 결혼 전문기관에서 신랑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한 것이 있어서 유심히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즘 신랑감 1위는 장래성보다도 신랑이 가지고 있는 경제력이었다. 한마디로 가정 형편이 좋은(?) 신랑감을 선호한다는 말이다.

현재는 다소 부족하더라도 먼 장래를 유심히 관찰하여 신랑감을 택했던 여공을 생각하니 왠지 씁쓸해진다.

효월 약력
* 1961년 5월 생 * 월간 녹색지대 前 편집장 * 역사·무협 소설가
장편 「황하(3권)」 「刀劍天下(6권)」등이 있고
단편 「누렁이」「보금자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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