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칼럼> 최병길 前광주로타리클럽 회장

‘일제강점기’는 이 시대 우리에게 무엇 이어야 하는가? 나라만 있고 민족이 없는 이 시대의 흐트러진 철학에게 조국의 전 재산과 인생을 그리고 목숨까지 바친 그들의 치열한 삶과 죽음마저 헛되게 하는 이시대의 세태에게 민족은 무엇이어야 하고 조국은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한국과 일본의 과거 36년간에 걸친 불행한 역사라 운운하지만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는 견문이 적어 알지 못한다. 이것은 한때 일본 수상이었던 이케다가 중위원에서 한 망언이고, 과거 일본이 한국을 식민통치를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한국의 발전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그보다 앞서 일본 외무대신 구로다 간이치로 가 공식 석상에서 발언한 망언이며 “한일합방을 강요한 일본도 나빴지만 굳이 그 책임을 묻는다면 그 당시에 도장을 찍은 수상 이완용에 게 있다. 싫으면 거절했으면 그만이다.

이것은 1995년 일본 총무청장관 에토 다카미가 기자회견 석상에서 발언한 망언이었다. 해방71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일본의 침략행위는 날로 더해만 가고 있다. 독도망언의 영토침략, 위안부에 대한 사과는 못할망정 여러 핑계로 오만방자한 행동을 하고 있는 일본인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비록 식민지시대의 치욕스런 역사일망정 우리는 일제시대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할 의무를 느낀다.

우리 민족처럼 고난의 길을 걸어온 민족도 드물다. 외적의 침입, 내란과 분열, 한때는 국토를 빼앗기기도 했고 내정의 간섭도 받았으며 끝내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로 까지 전략하고 말았던 비운의 민족이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끝내 불멸의 의기로 다시 일어나 광영(光榮)의 새 역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유사 이래의 민족중흥기를 맞아 조국광복을 위해 몸 바친 수많은 구국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과 그 의지를 본받고 굳게 되새기자는 뜻으로 독립기념관을 건립했다.

전 국민의 성금으로 건립된 독립기념관이 상징하는 주체가 주로 일제 침략 하에서의 독립항쟁사인 것처럼 이 책의 내용도 민족수난사의 최대 암흑기인 일제침략시대의 역사를 담고 있다. 일본은 1902년 영국과 동맹을 맺고 한패거리가 되었으며 미국도 같은 편이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프랑스, 독일과 같은 편이 되었다.

이렇듯 20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이들 해양국과 대륙국 열강들이 서로 3개국씩 편을 갈라 어디든지 어수룩한 나라가 있으면 집어삼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세계정세 속에서 러시아와 일본은 극동제패의 노른자위인 한반도와 만주 대륙을 먹으려고 오래도록 서로 각축전을 벌려왔다.1895년 청일전쟁으로 노대국 청나라를 굴복시킨 신흥제국 일본은 뒤늦게 등장한 러시아의 엄청난 덩치에 밀려 한반도와 만주대륙에서 기를 펴지 못했다.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태평양진출을 못마땅해 하는 영국과 미국이 일본을 부추겨 러일전쟁을 일으킨다, 100년 전 정세나 지금의 정세를 살펴볼 때 최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고 우호를 다지는 모습을 볼 때 당시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국내정치도 중요하지만 외교 또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이제는 적도 없고 아군도 없는 국제 정세 속에서 늘 강대국 틈에 끼어 외줄타기를 하는 한반도는 편할 날이 없었다.

1898년 일본이 한일의정서를 성립시키고 조선침략을 본격화 하자 러시아는 청나라와 비밀협약을 맺고 만주대륙의 영구점령을 꾀했다. 그러자 일본은 미국과 영국의 후원을 얻어 1902년 4월 북경에서 만주철병조약을 맺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를 묵살하고 만주철병은 커녕 조선영토인 압록강 하류 용암포를 점령, 포대를 쌓고 일본 등 열강으로부터 조선의 독립을 보호한다는 구실을 댔다. 만주에 극동 대총독부를 세워 알렉세이예프를 대총독으로 임명하고 군사, 외교의 전권을 행사하게 했다.

당시 한반도의 운명은 청나라와 러시아, 영국과 미국의 지원을 얻는 일본의 야욕의 중심에서 누군가에게 먹힐 수밖에 없는 처절한 운명이었다. 우연이라기에는 믿기 어려운 조선말기의 권력의 중심에는 과연 국가를 지탱하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아련하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턱 밑에서 같은 동족이 핵폭탄, 미사일로 하루가 멀다 하고 협박하고, 북한을 껴안은 중국, 중국을 견제한다고 일본과 미국이 손잡고 똑 같은 수순이다. 국내정치권은 당리당략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100년 전 당파싸움이 여전한 것은 베껴놓은 역사소설책 같다.

러시아에 의해 대륙침략의 야욕이 벽에 부딪치게 된 일본은 1903년 7월 러시아에게 청나라에 대한 러일 양국의 침략 잠식의 기회를 균등히 할 것과 조선에서의 일본의 우위를 인정하도록 요구했다. 한말로 덩치가 큰 청나라는 러시아와 일본이 균등하게 나누어 먹고 조선은 일본이 혼자 먹도록 건드리지 말라는 약속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러시아는 조그마한 녀석이 겁도 없이 덤빈다고 일본의 요구를 일축해 버렸다. 영국과 미국의 후원으로 1904년 2월 6일 러시아에 최후통첩을 보낸다. 그리고 2월10일 선전포고를 하였다. 일본은 이틀전날 무적을 자랑하던 러시아의 여순함대를 불시에 공격 단 한 척의 군함도 남기지 않고 몰살을 시켰다. 이것이 100년 전에 살아있던 역사의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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