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 절대강국 진나라도 처음에는 변방의 촌놈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상앙(법치주의) 같은 인재를 등용함으로서 차츰 강국이 되었고 이왕이면 자신의 포부를 강국에서 펼쳐봤으면 싶은 영웅(인제)들이 구름처럼 모여들므로 해서 진나라는 강함에 강함을 더해 결국 천하통일을 이루어냈다.

이처럼 진나라가 구름처럼 모여든 인재들을 바탕으로 서슬퍼렇던 춘추전국시대 말엽, 진나라에 그런대로 맞섰던 나라는 바로 조나라다.

조나라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세 걸출한 영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 영웅은 이전 드라이브 코스(장평전투)에서 잠깐 언급했던 염파와 조사(장평전투 패장 조괄의 아버지) 그리고 인상여를 말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조사가 죽자 이제는 조나라를 떠받치는 기둥은 염파와 인상여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염파와 인상여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염파는 목숨을 건 수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워 중신이 된 반면에, 인상여는 환자령(宦者令 : 후궁의 감독관)이라는 별 볼일 없는 사인에서 화씨의 벽(和氏之壁) 사건과 민지 회맹에서 세 치 혀로 진나라 소양왕을 우롱하고 15개성을 지켜낸 일로 천하에 명성을 떨치게 되었고 그 공로로 일거에 중신 반열에 오른 인물이었다.

때문에 염파는 갑자기 자신과 지위가 같아진 인상여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그런 심사를 굳이 감추지도 않았다. 해서 인상여는 가급적 염파와 부딪치지 않으려고 피해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의 수레가 길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인상여가 서둘러 길을 비껴주라고 마부에게 명령했다.

평소 불편한 두 사람 관계를 잘 알고 있던 마부는 주인님은 배알도 없느냐고, 왜 염파를 두려워하느냐 하면서 한심하다고 했다. 이에 인상여가 말했다.

“나는 진나라 왕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어찌 염파를 두려워하겠느냐? 그렇지 않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쉽게 넘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에 두 사람이 싸운다면 조나라는 어떻게 되겠느냐? 그래서 양보를 하는 것이니라”

몇 칠 후, 마부는 빈 수레를 끌고 가다 역시 빈 수레를 끌고 오는 염파 마부와 마주쳤다. 마부는 얼른 길을 비껴줬다. 그러자 염파 마부는.

“푸하하하! 역시 그 주인에 그 마부로다1

하고 업신여겼다. 마부는 염파 마부를 불러 자신의 주인이 한 말을 그대로 해주었다.

자신의 마부로부터 그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즉시 술을 들고 인상여 집을 찾아가 자기의 잘못을 사과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 의좋게 조나라를 위해 합심하고 조나라가 망하면 함께 목이 잘린다는 굳은 결의로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맹세했다.

대의를 위해 양보할 줄 알았던 인상여와 자신의 잘못을 깨우친 즉시 사과할 줄 알았던 염파는 과연 걸출한 영웅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요즘 여야 할 것 없이 상생정치를 다짐하고 있다.
우리나라 여야 정계에서 상생이라는 말이 활발하게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 김대중 정부 때지 싶다. 투쟁적인 여야 개념이 상생 개념으로 바뀌어 가는 좋은 징조였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볼 것도 없이 그 때의 상생은 말뿐인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대통령 탄핵 같은 반 상생적인 정치는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은 총선을 통해 보여주었다. 자의든 어쩔 수 없든 우리 나라 정계도 바야흐로 상생정치를 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풍토가 되어가고 있지 않나 싶다.

효월 약력
* 1961년 5월 생 * 월간 녹색지대 前 편집장 * 역사·무협 소설가
장편 「황하(3권)」 「刀劍天下(6권)」등이 있고
단편 「누렁이」「보금자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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