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통일을 이룬 진나라의 수많은 재상 중에 이사(李斯)는 관료로서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로 정평이 나있다.

이사는 원래 초나라 사람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초나라 군부에서 허드렛일을 도맡아하는 소사였다. 별 볼일 없는 직업에 그런 대로 만족하고 살던 그는 어느 날 뜻밖에 <장소의 효용>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 일화는 이렇다.

어느 날 그는 군부 쌀창고에 볼 일이 있어 들어갔는데, 그 창고에서 쥐가 느긋하게 쌀을 먹고있는 것을 보았다. 평소 뒷간에서 보는 쥐는 더러운 곳에 숨어서 사람 인기척에 놀라 달아나곤 했었다. 그런데 쌀창고에서 본 쥐는 쾌적한 환경에서 인기척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고 당당히 쌀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원래 쌀창고에서 사는 쥐는 뒷간에서 사는 쥐보다 잘나거나 똑똑해서가 아니다. 이는 사는 장소가 다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타고난 재능보다는 살고 있는 그 장소가 일생을 좌우하는 것이 아닐까?.

이와 같은 깨달음을 얻은 이사는 당장 소사 일을 그만두고 보다 나은 새로운 자리를 찾기 위해 순자(荀子) 문하생이 되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난 후 진나라로 건너가 재상 여불위의 식객이 되었고 여불위의 천거로 관직에 진출하여 장사(長史 : 장관), 정위(廷尉 : 사법장관)을 거쳐 마침내 재상에까지 이르렀다.

소사로서 그저 그런 삶을 살다갔을 그가 장소의 효용을 깨달음으로서 일국의 재상으로 일생을 풍미했던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대중 소설가 딘R·쿤츠는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소설가는 어느 단계에 서기까지 춥고 배고픈 직업이다. 그래서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종종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가급적 이런 아르바이트를 반대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직업을 신중히 골라야 한다. 아르바이트라 해서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술집 웨이터 같은 건전치 못한 직업을 택한 친구 치고 그가 꿈꾸는(소설가) 것을 이룬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그런 친구 중에는 분명 뛰어난 재능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쿤츠의 이 말은 잠시 해보려던 아르바이트라도 그 직업이 갖는 분위기에 자칫 빠져들어 일생을 망칠 수 있다는 경고다. 즉 장소의 효용을 일깨우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미군이 이라크 포로를 학대한 행위로 인해 파문이 일고 있다. 포로를 학대하는 대표적인 사진에는 여군이 나체 이라크군 포로를 개목걸이로 걸어 끄는 것과 역시 같은 여군이 담배를 꼬나물고 나체 이라크군 성기에 총을 쏘는 시늉을 하는 사진이 있다. 이 두 사진으로 인해 그 여군은 졸지에 포로학대 상징적인 인물이 되어버렸다.

여군의 신상은 곧 밝혀졌다. 21살의 린디 잉글랜드 일병이라고 했다.

그런데 곧 교도소에 갈 처지가 된 그녀가 군에 입대하게 된 동기는 집이 가난해서 공부 할 수가 없어 학비를 벌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애국충정에서가 아니라 학비를 벌기 위해 군에 입대했다는 게 우리나라 정서로서는 쉽게 납득되지 않지만, 어쨌든 이천여 년 전 이사가 쌀창고에서 사는 쥐를 보고 깨달았던 <장소의 효용>과 쿤츠가 말한 아르바이트 경고의 관점에서 본다면, 학비를 벌려고 군에 입대한 그녀의 선택은 확실히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은 인성을 파멸시키는 가장 적나라한 현장이다. 그래서 우등생이고 모범생이었던 그녀가 아리따운 20대 여성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포로 성고문의 가해자로 전락되고 말았지 않았나 싶다.

효월 약력
* 1961년 5월 생 * 월간 녹색지대 前 편집장 * 역사·무협 소설가
장편 「황하(3권)」 「刀劍天下(6권)」등이 있고
단편 「누렁이」「보금자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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