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드라이브 코스는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듣는 실례로 골라 보았다.
옛날 손빈(손자병법 저자)이 제나라 전기장군의 식객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전기는 왕족들과 경마도박을 즐겼는데 번번이 지기만 했다. 이를 보고 손빈이 전기에게 돈을 크게 걸게 한 다음, 이길 수 있는 계책을 말해 주었다.

당시 경마도박은 각각 3마리 말을 달리게 하여 3회 승부를 가리는 방식이었다.

손빈의 계책은 이러했다.
상대의 가장 상등품 말에 이쪽은 가장 하등품 말로 상대하면 1패를 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상대의 중간품 말에 이쪽은 상등품으로 상대하게 하면 1승을 챙길 수 있다. 그리고 상대의 하등품 말에 이쪽은 중간품 말로 상대함으로서 다시 1승을 챙길 수 있어 결과적으로 2승 1패로 최종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기는 손빈의 계책대로 하니 과연 승리하였다.
이러한 손빈의 계책을 중국인은<부분에 집착하다가 전체를 망가뜨리는 일을 경계하는데 좋은 본보기, 즉 전체파악 활용법의 지혜로 삼았다. 이는 <이 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한다>나 <보다 큰 승리를 위해선 때론 져줄 줄도알아야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하겠다.

필자도 대학재학시절 과별 체육대회 때 이와 같은 계책(?)을 써본 일이 있다. 당시 우리 국문과 씨름팀은 문과대학에서는 제법 강자노릇을 했지만, 이공계 팀에 비해서는 열세를 면치 못했다. 그래서 손빈의 계책대로 우리팀 제일 약한 선수를 첫 번째 주자로 세워서 상대팀 제일 강자와 맞붙게 하고, 우리팀 두 번째 약한 선수를 상대팀 두 번째 강자와 붙게 한 다음, 우리팀 제일 강자를 세 번째, 두 번째 강자를 네 번째, 중간 선수를 상대팀 제일 약한 선수와 붙는 다섯 번째 주자로 내세웠던 것이다. 그러니까 두 번을 져주되 세 번을 내리 이겨서 3승2패로 승리하겠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역시 이 계책은 맞아떨어져서 우리팀은 예상을 뒤엎는 좋은 성적(우승은 못했지만)을 올렸다. 그러나 우리에게 패한 상대팀 학생들이 우리의 속셈을 알고 난 후, 쏟아진 비난은 엄청났다. 특히 그 계책을 제안했던 필자는 <잔대가리꾼>이라는 시금털털한 별명을 졸업 할 때까지 달고 다녀야 했다. 하기사 친선을 도모하는 체육대회(전체)에서 승부(부분)에 집착한 나머지 정정당당치 못하게 술수(꽁수)를 부렸으니 그런 소리를 들을 만도 했다.

요즘 메이저리그를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홈런을 뻥뻥 쳐대는 최희섭, 지난 2년보다 확실히 나아진 듯한 박찬호, 첫 등판에서 무실점으로 승리를 따낸 김병현 등 우리나라 선수들의 맹활약이 두드러지니 더욱 그렇다.

그런데 필자는 메이저리그 감독들이 팀 성적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경질되는 것을 볼 때면 대학시절 잔대가리 꾼 다운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다. 왜냐하면 메이저리그 팀들은 철저한 투수 능력별로 제1 선발부터 제5 선발까지 정한 다음, 우직스럽게 밀어붙이는데, 손빈의 계책대로 선발투수를 상대 투수에 따라 슬쩍 슬쩍 변용 한다면 팀 성적이 훨씬 좋아질텐데 하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메이저리그가 꿈의 무대가 되고 팬들의 외면을 받지 않는 것은 팀 성적(부분)에 우선하여 흥미 있는 팬 써비스(전체)를 최고의 대의(大義)로 삼고 있고 또 그대로 실천하기 때문이란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만 팀 성적에 너무 집착하는 듯한 우리나라 프로야구감독들에 비해 메이저리그 감독들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어떠한 경우에도 술수를 쓰기보다도 대의에 철두철미하게 따르는 모습이 그저 경이로워서 해보는 생각이었다.

메이저리그는 부분에 집착하다가 전체를 망가뜨리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손빈의 계책을 그대로 보여주는 현대판 실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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