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 정나라 목공(穆公) 21년 때의 일이다. 정목공은 공자 귀생(歸生)에게 군대를 주어 이웃 송나라를 치게 했다.

이에 송나라는 화원(華元)을 원수로 임명하여 방어에 나섰다. 화원은 정나라 군대가 대극(大棘 : 하남성 서쪽)에 다다르자 공격을 감행했다. 이른바 대극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화원은 공격에 앞서 양고기 탕을 끓여 부하 병사들에게 배불리 먹였다. 병사들의 기력도 돋구고 사기도 높여서 정나라 군대를 일거에 섬멸해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 공격하려던 찰라 자신의 마부(馬夫)가 자기는 양고기 탕을 먹지 못했다고 투덜거렸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화원은 깜박 잊고 챙겨주지 못했으니 참으라고 말하고 공격 북소리를 울렸다.

북소리와 함께 송나라 병사들은 과연 용맹스럽게 돌진해갔다. 순간! 너무나 뜻밖인 일이 벌어졌다. 본 진영에 있던 마부가 갑자기 말에 채찍을 가했던 것이다. 어찌해볼 틈도 없이 화원의 수레는 순식간에 선봉부대를 앞질러 적진 속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그리고 마부는 수레에서 내려 줄행랑쳐버렸다. 역사에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송나라 병사는 물론 맞아 싸우는 정나라 병사들도 어리둥절해 했다.

화원은 맥없이 사로잡혔고 대장 잃은 송나라 군대는 뭐가 뭔지 헷갈리다 궤멸 당했다.
이처럼 대극전쟁은 양고기 한 그릇 때문에 승패가 결정 난 코메디같은 전쟁이었으며, 송나라 입장에서는 사소한 원한이 낳은 어처구니없는 참극이었다.

후에 사람들은 이를 빗대어 <양침의 원한>이라 명명하고, 그만큼 음식의 원한은 무섭다는 의미로 삼았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보면 음식이 아니더라도 정말 별것도 아닌 사소한 일에 앙심을 품고 기어코 앙갚음을 하고 마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특히 옛날 일본인들은 그 정도가 아주 심했다고 한다. 그네들은 앙갚음을 하는 방법도 서부의 사나이들처럼 정정당당히 결투를 청해서 빵! 빵! 하는 복수가 아니라 어두운 곳에 숨어 있다가 등뒤를 공격하거나 그 집에 몰래 불을 지르기도 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까 다른 사람 감정을 샀다간 편히 살아 갈 수가 없었다. 해서 길거리를 지나다 살짝 어깨만 부딪쳐도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사죄를 하고 처음 대하는 낯선 사람에게도 항상 웃으며 대하는(인상 긁었다고 감정사면 큰일이므로) 습관이 몸에 베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습관으로 인해, 현대 들어 일본인은 세계에서 가장 친절하고 상냥한 국민이라는 칭송을 듣게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얼마 전에 이라크 반미 무장단체가 일본인 세 명을 납치한 다음 이라크에 파병한 자위대를 철수하지 않으면 살해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뒤에 피납된 세 사람은 무사히 풀려나긴 했지만 그간 일본 국내는 꽤나 시끄러웠다.

고이쯔미 수상은 어떠한 협박에도 철군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었고, 피납자 가족들은 파병의 부당성을 역설하며 철군을 주장하는 한편, 제발 살려달라며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국정을 책임진 수상의 곤혹스러움이나 피납자 가족들의 절박함을 생각하면 국론이 들끓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피랍자 가족들은 철군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연지 얼마가지 못해서 그것을 철회하는 기자회견을 다시 열어야했다. 철군 주장은 절박함에서 나온 실수였으니 제발 용서해달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이었다. 물론 가족들이 국가 대의를 위해 피납자들이 희생 되도 좋다는 어떠한 심경변화에서 나온 말은 아니었다. 직접적인 사정은 온갖 악랄한 협박 때문이었다고 한다. 위험지역에 들어간 사람들이 잘못인데, 왜 철군해야 하느냐는 항의성 협박에서부터 가족들까지 모두 몰살시켜버리겠다는 섬뜩한 협박에 이르기까지 밤낮 없이 시달렸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집단 이지메를 당한 것이다.

사소한 원한(앙심)도 반드시 되갚았던, 그래서 보복 당할까 매사 조심스러웠던 일본 국민성은 힘있는 강자에게는 비굴하리만치 약하고 반대로 약자에게는 잔혹하리만치 강한 속성이 체질화되지 않았나 싶다. 절대강자 미국에게는 죽었다 깨어나도 <아니오>라고 못하면서 절박한 궁지에 몰린 약하디 약한 피납자 가족들에게는 서슴없이 협박하는 대담성(?)만 봐서도 그렇다.

언젠가 일본 어느 학자가 인터뷰한 말이 생각난다.

"군부독재에 부단히 항거하여 결국 민주주의를 쟁취한 한국국민이 부럽다. 일본인은 결코 그렇게 할 능력이 없으니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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