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틴하면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승인한 로마 황제로 유명하다.
그가 한참 권력 전쟁을 하고 있을 때다. 이미 기독교로 귀의한 그의 어머니는 기도를 많이 하였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콘스탄틴은 어느 날밤 꿈속에서 휘하 병사들의 휘장을 십자가로 바꾸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하나님 계시를 받게된다. 그는 계시대로 병사들의 휘장을 십자가로 모두 바꾸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전쟁마다 승승장구하게 되었고 결국 로마 황제로 즉위하게 되었다.

물론 일부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그런 계시를 부인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황제에 오른 콘스탄틴은 어머니도 기독교인이고 또 십자가 덕분에 황제가 되었다고 생각했으므로 기독교를 승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승인하고 보니까 황제 입장에서는 고민이 생겼다. 얼마가지 않아서 기독교 교세가 로마교회를 중심으로 너무 커진 것이다. 하기야 그간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했던 기독교였으니 오죽했겠는가. 교세가 얼마만큼 폭발적으로 늘어났느냐 하면, 원로원 원로들이 교회에서 정치를 논할 정도였다고 하니 가히 짐작이 갈 것이다.

이쯤 되고 보니 콘스탄틴 입장에서는 슬슬 왕따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을 터였다. 그렇다고 황제 체면에 기독교도가 되기는 뭐했고.(기독교 세례를 받자면 사제에게 머리를 숙여야 했으므로. 그러나 임종 직전에 기독교로 개종하여 세례를 받았음)

여차저차 고민 끝에 콘스탄틴은 교회와 국가를 자신의 통제하에 확고하게 묶어두려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즉시 실행에 옮겼다.

그 첫째가 엄청난 재물과 함께 어마어마하게 크고 화려한 성전도 지어주겠다고 하면서 사제들의 환심을 사려는, 이른바 회유책이었다. 하지만 사제들은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무리 줄기차게 회유해도 소용없었고 은근히 협박을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날 죽이시오! 하고 목을 들이미는데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교회를 장악하지 못한 콘스탄틴은 <그래, 니네들 끼리 잘먹고잘살아라!>하는 식으로 수도를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콘스탄틴노플시로 옮겨버렸다. 그리고 거기서 콘스탄틴노플교회(후에 정교회 모태가 됨)를 짓고 자신의 뜻대로 교회를 손아래 두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명목상에 불과했다는 것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총선을 몇 칠 앞둔 얼마 전에 유시민 의원이 2년 전, 모 잡지에 인터뷰한 내용을 두고 한국 교회를 악의적으로 폄하했다 해서 논란이 인적이 있었다.

그 논란을 보면서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솔직히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유 의원의 시각이 참으로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고자 했던 많은 교회는 제쳐두고 그렇지 못한 교회만을 기준으로 너무 치우친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말이 틀렸다고 딱히 말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그 이유를 일일이 논하기는 어렵다. 대신 교회에서 몇몇 교인들과 나눈 의견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교인들도 대부분 유 의원의 발언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옳은 말 해놓고 회개는 왜 하는 거냐며, 자신의 발언을 사과한 유 의원을 오히려 나무라는 교인까지 있었다.

사실 교회를 보는 사회 시각이 따가운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교회를 사업의 일환으로 보는가 하면, 독재권력의 부역자였다느니, 부패의 온상이라느니, 금전만능주의가 가장 팽배한 곳이라느니, 독선과 아집의 표상이라는 등의 수식어가 붙어 다녔다. 오죽했으면 <우리 교회는 상식이 통하는교회입니다.>라는 표어가 다 등장했겠는가.

이번 총선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그렇다. 일부 기독교 단체의 맹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유 의원은 당선되었고 기독교인이 천만이 넘는다는 우리나라지만 기독당에 보낸 표는 1%를 넘지 못했다. 그만큼 교인들까지도 외면했다는 말이다.

주여!
우리나라 교회도 온갖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았던 옛날 로마교회처럼 올곧음과 청렴성이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살아 있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성령 주시옵기를 간구하오며,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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