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 때의 일이다. 진나라 30만 대군이 조나라를 침범했다. 비상이 걸린 조나라는 중신이자 노장인 염파에게 45만 군사를 주어 막도록 했다.

염파가 진나라가 침범한 상당(上堂)에 이르자 진나라 군대의 기세는 가히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깜짝 놀란 염파는 군대를 장평(長平) 성에 주둔시키고 꼼짝하지 않았다. 이렇다할 저항이 없자 순식간에 상당을 석권한 진나라는 여세를 몰아 장평성을 포위했다.

진나라 대장은 왕흘(王)이라는 젊은 장수였다. 그는 노장 염파를 젊은 패기로 뭉개버릴 작정이었다. 그래서 기세를 다해 도전했으나 염파는 출격하지 않았다. 비겁한 놈이라고 욕을 해대도 소용없었다. 할 수 없이 왕흘은 성을 직접 공격했다. 하지만 성은 굳게 닫힌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성 공격이 길어지자 차츰 진나라 군대는 지쳐갔다. 한 달이 가고 두 달, 세 달이 지나자 군대의 사기는 눈에 띄게 저하되었다. 그때서야 왕흘은 염파의 노련한 술책에 속았음을 간파했다. 이른바 지공책이었다. 지공에는 보급로가 긴 진나라 군대가 불리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고 섣불리 철수할 수도 없었다. 보나마나 염파는 그때를 노리고 있었을 테니까. 진퇴양난에 빠진 왕흘은 아군이 처한 현실을 본국에 부랴부랴 보고했다.

당시 진나라의 재상은 범저(우여곡절이 많은 사람이므로 조만간 드라이브 코스로 잡을 예정임.)였다. 보고 받은 범저는 노련한 적장 염파만 장평성에서 떼어낸다면 진나라 군사는 위기에서 빠져 나올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다.

판단이 서자 그는 한단(조나라 수도)으로 스파이들을 대거 투입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유언비어를 퍼트리도록 했다. "염파가 싸우지 않는 이유는 진나라로넘어가려고 조건을 교섭하고 있기 때문이다 " 또는 "염파는반역을 모색하고 있다 " 뿐만 아니라 "조나라에서는 염파를, 병법의 천재 조괄(趙括)로 교체시킨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정말로 큰일이다. 진나라 군사는 조괄을 제일무서워한다 " 이런 역정보도 흘렸다.

교란과 역정보 활동을 벌인지 얼마 후에 조나라 조정은 과연 술렁였다. 염파가 진나라에 투항하거나 모반할 거라는 소문에는 설마 했지만, 진나라 군사가 조괄을 두려워한다는 정보에는 귀가 솔깃해졌다.

조괄은, 생전에 염파와 어깨를 견주던 명장 조사의 아들이었다. 그는 타고난 천재였다. 병법에서 그를 앞설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그는 선친 조사와 지도 위에서 벌이는 가상 전투를 하곤 했었는데, 한번도 패한 적이 없이 백전백승이였다. 하지만 조사는 그런 아들이 너무 자만해 하고 이론에 치우친 나머지 상황변화에 신속히 대처하는 임기응변이 부족하다고 우려했다. 해서 아들이 군 총수가 된다면 조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라고 조괄 생모에게 말하곤 했었다. 당연히 자신이 살아생전에는 아들을 조정에 추천하지 않았던 거고.

그러나 조나라 효성왕은 "적이 꺼려하는 곳을쳐라"는 병법에 의해 염파를 진나라 군사가 무서워하는 조괄로 교체키로 결정했다.

그 소식을 들은 조괄 생모가 헐레벌떡 달려와서 생전에 조사가 한 말을 상기시키며 반대했다. 하지만 효성왕은 원래 부모란 자식에게 노파심을 가지게 되어있다며 막무가내였다. 얼마 후 조괄은 장평성으로 가서 군 지휘권을 염파로부터 인계 받았다.

때를 같이 하여 진나라 재상 범저도 젊은 왕흘을 물러나게 하고 당대 최고의 백전노장 백기에게 지휘권을 넘겨 조괄과 상대하도록 했다. 이리하여 진소양왕 47년, 역사에 기록된 장평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엄청나게 동원된 양측 군사에 비해 전쟁은 너무나 싱겁게 끝나버렸다. 패기 충만하던 조괄이 백기의 유인책에 덜컥 말려들어 맥없이 죽어버렸고, 대장 잃은 조나라 군사 45만은 우왕좌왕하다가 죽거나 대부분 포로가 되었다. 포로들은 후에 살곡(殺谷)이라 불리는 곳에서 갱살(坑殺 : 생매장)되었다. 싱겁게 끝난 전쟁치고는 결말은 또 너무나 처참했던 것이 장평전투였다. 그리고 이 전투는 실전경험과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쳐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요즘 신문을 보니 촛불 시위다 탄핵정국이다 시끄러운 가운데 눈길끄는 설문 조사가 있었다. 20대 유권자들 85%가 이번 총선에 투표하겠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과거 투표율이 가장 낮았던 세대란 점을 감안하면 가히 혁명적이다. 아닌게 아니라 여·야 할 것 없이 요즘처럼 노장들 목소리는 간데 없고 소장파들의 목소리가 컸던 적은 없었지 싶다. 그것은 정치권의 온갖 부패상이 다 드러나다 보니까 비교적 참신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소장파들이 주목받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만약에 지금 추세대로 선거가 끝난다면 정치인 세대교체는 기대 이상으로 폭이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실로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간에 균형이 무너지면 위태롭기 마련이다. 개혁적인 패기 만만함이 있으면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련미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물론 부패한 노련미까지 어쩌자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 기존 정치권(특히 야당) 단죄 열풍이 너무 거세다 보니까 그 와중에 의정활동이 충실했던 중진들까지 모두 매몰되어버릴까 걱정돼서 한 말이다.
저작권자 © 광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