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다원적인 세력균형은 5세기가 지나면서 중국 대륙에 강력한 통일제국(수·당나라)이 출현됨에 따라 깨어지고 중국중심의 일원적인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는 정세로 급변했다. 그 와중에 동북아시아에서 독자적인 세력권을 구축하고 우뚝 서있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가 다름아닌 고구려다. 이러한 고구려는 통일제국 입장에서는 목에 걸린 가시였다.

목에 걸린 가시는 당연히 제거해야된다고 생각한 수나라는 끈질기게 고구려를 침공했다. 그러나 고구려가 어디 만만한 나라인가? 오히려 수나라는 고구려의 날카로운 잽을 번번이 허용하다가 종내는 을지문덕 장군의 카운터 펀치에 걸려들어 그로기상태로 헤롱 헤롱 거리 다가 망해버렸다.

수나라에 이은 당나라도 고구려는 암적 존재였다.
당나라는 중국 역사상 이민족이 세운 원나라(몽고족)를 제외하면 최고의 군사 강대국으로 손꼽히는 나라였다. 실제로 당태종은 고구려를 정벌하기는 주머니 속의 물건 다루기보다 쉽다고 큰소리 땅땅 쳤는데, 두 나라 군사력을 비교해보면 그럴 만도 했다. 당나라는 정규 군사만 400만인 반면에 고구려는 남녀노소 모두 합해도 400만에 못 미쳤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당태종이 고구려에 대고 큰소리친 데는 정치적 의도도 있었지 싶다. 당시 고구려는 수와 잦은 전쟁으로 국력이 많이 소모된 상태다 보니까 대당 온건파가 득세하고 있었는데, 당태종은 그런 온건파를 측면 지원하는 한편, 대당 강경파에게는 일종에 엄포를 놓은 셈이다.

하지만 대당 강경파인 연개소문이 온건파를 거세하고 실권을 장악하자 당태종의 엄포는 그야말로 공갈포가 되어버렸다. 이에 머쓱해진 당태종은 즉각 군사를 일으켜 세웠으나 연개소문에게 보기 좋게 박살났다. 400여 척의 함선(艦船)을 수장시킨 요수대첩(療水大捷)이 바로 그것이다.

약이 오를대로 오른 당태종은 친히 30십여 만의 대군을 휘몰고 질풍처럼 쳐들어왔다. 그러나 역시 연개소문과 양만춘(陽萬春)에 의해 무참히 패했다. 이 전쟁에서 당태종은 양만춘의 화살에 눈알 빠진 애꾸가 되어 달아났고 뒤쫓는 연개소문에게 군사 대부분을 잃었다. 이를 두고 고려의 문호 이색(李穡)이 당태종을 이렇게 조롱했다. "謂是囊中一物耳 那知玄和樂百羽(위시낭중일물이 나지현화락백우) 뉘 알았으랴 고구려 정벌하기는 주머니 속의 한 물건 다루기보다 쉽다고 큰소리 치더니 당태종의 눈알에 화살이 꽂칠 줄이야"
연개소문의 승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대륙 깊숙이 쳐들어가 용맹을 유감 없이 떨쳤는데, 그 흔적은 지금도 북경(北京) 안정문(安定門) 부근의 고려진(高麗鎭)과 하북성의 고려성(高麗城)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연개소문을 두고 단재 신채호는 "연개소문이야말로 고구려의 걸출한 민족 영웅이며, 중국에서 가장 영걸한 임금으로 손꼽히는 당태종 이세민(李世民)도 연개소문만큼은두려워했다"고했다. 또 해상잡록(海上雜錄)을 인용하여 고구려의 걸출한 두 명의 위인은 명림답부(明臨答夫)와 연개소문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심지어 어떤 학자는 그가 갑자기 요절하지 않고 10년만 더 살았다면 당나라는 고구려에 의해 멸망됐으리라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당시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보아 전혀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니지 싶다.

그러나 어쨌거나 우리 민족 입장에서는 참으로 안탑깝게도 연개소문은 갑자기 요절했고(분명한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음) 아들들의 분열로 인해 고구려는 나당연합군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불패를 자랑하던 연개소문이 죽고 고구려가 멸망한지 어느덧 천여 년이 지났다. 그런데 지금 중국은 고구려는 우리 겨레와 아무 상관없다고 우기고 있다. 일본이 심심하면 독도가 자기네들 땅이라고 부아를 올리더니만, 중국은 한 술 더 뜬 셈이다. 하기사 자칫했으면 대륙이 몽땅 우리 한민족 차지가 될 뻔했으니 지네들 딴에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할 터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곰곰이 생각해보면 중국이 막가파식으로 고구려사를 왜곡시키려는 데는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 그동안 후예로서 고구려사를 연구발전 시키기보다는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 스스로 왜곡도 서슴지 않았다.

왜곡의 선봉은 김부식이다. 그는 신라의 정통을 부각시키기 위해"삼국사기"에서 고구려 백제의 빛나는 역사를 빼거나 왜곡을 일삼았는데, 연개소문도 임금을 시해한 잔익무도하고 포악한 신하로 꾸며 놓았다. 뿐만 아니라 성씨인 연(淵)마저도 당나라 고조(高祖)의 이름이 이연(李淵)이라는 이유로 같은 못의 뜻을 가진 천(泉=淵)으로 바꾸었다. 이웃 나라 왕의 이름과 성씨가 같다고 고구려의 대막리지(재상)였던 연개소문이 천개소문이 되어버린 것이다. 솔직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사대주의 근성인가.

그러나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김부식의 이러한 왜곡된 사관이 21세기에 접어든 지금까지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대주의 근성은 물론이고.

다행이 요즘 들어 연개소문 바로 알기 연구가 인터넷을 통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역시 우리나라의 희망은 네티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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